치매는 유전일까?

어쩌면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by 건강팡 원장
치매 노인

치매는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질환 중 하나다. 기억이 흐려지고,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며,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조차 잊게 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무겁게 다가온다.

특히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면, “혹시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까?”라는 불안이 커지기 마련이다. 과연 치매는 유전되는 질병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과학은 “예”와 “아니오” 사이에서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치매의 원인을 이해하려면 치매가 단일 질병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증상들의 집합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가장 흔한 유형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전체 치매의 약 60~70%를 차지한다. 그 외에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 등이 있으며, 각각의 발병 기전은 다르다. 이 중 유전과 관련이 깊은 경우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다.

알츠하이머병을 예로 들어본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가장 흔한 형태로, 뇌 속에 ‘베타-아밀로이드’라는 이상한 단백질이 쌓이면서 신경세포가 망가지는 병이다. 쉽게 말하면, 뇌가 점점 제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 병이 유전으로 부모에게서 자식에게 전해질 수 있는지가 궁금한 지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는 매우 드문 경우다. ‘가족성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전체 알츠하이머 환자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이 경우 APP, PSEN1, PSEN2라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 발병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만약 부모 중 한 명이 이런 유전자 이상을 갖고 있다면, 자녀가 이를 물려받을 확률은 50%다. 그러면 보통 40~50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증상이 나타난다. 집안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젊은 나이에 치매가 나타난다면, 유전 요인을 의심해볼 만하다.

하지만 두 번째 이야기가 더 흔하다. 대부분의 알츠하이머병은 이렇게 확실한 유전 패턴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APOE라는 유전자가 살짝 영향을 미친다. 이 유전자는 e2, e3, e4라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그중 특히 e4를 가진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 만약 부모 양쪽에게서 e4를 물려받았다면, 발병 위험이 10배 이상 커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병에 걸린다”는 확정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냥 “조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다”는 정도의 위험 신호일 뿐이다. e4가 있어도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많고, e4가 없어도 치매에 걸릴 수 있다.

쉽게 정리하면, 알츠하이머병은 아주 드물게 유전으로 확실히 전해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유전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POE e4 같은 유전자가 위험을 조금 높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유전자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생활 습관이나 건강 관리에 더 신경 쓰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다면 유전 외에 다른 요인은 없을까? 환경적 요인과 생활 습관도 치매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고혈압, 당뇨, 비만, 흡연, 운동 부족 등은 혈관성 치매나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교육 수준이 높거나 평생 학습을 지속한 사람은 치매 발병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를 ‘인지 예비력’ 이론으로 설명하는데, 뇌가 더 많은 자극과 훈련을 받을수록 손상에 대한 저항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즉, 유전자가 불리한 조건을 깔아놓았다 해도, 삶의 방식으로 그 영향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다.

결론적으로, 치매는 유전적 요인이 전혀 없는 질병은 아니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는 치매를 직접 유발할 수 있고, 일부 유전자는 발병 위험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다수 사례에서 유전은 퍼즐의 한 조각일 뿐, 전부가 아니다. 나이, 생활 습관,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며, 이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치매의 발병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니 가족력이 있다고 해서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금부터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머리를 자극하는 활동을 늘리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처법일 것이다.

치매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투성이지만, 과학은 점점 더 많은 단서를 찾아내고 있다. 언젠가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완벽히 이해하게 된다면, 치매를 예방하거나 늦추는 길도 더 선명해질 것이다. 그때까지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당신의 유전자는 운명이 아니라 가능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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